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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 과연 나는 진짜를 보고 있는가.
생명과학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빠질 수 없는 한 실험기기가 있다. 바로 현미경이다. 현미경은 미시적인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실험기기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해주는 것이다. 과거의 현미경은 빛의 굴절과 반사 등을 이용하여 상을 크게 만들어서 이를 보는 아날로그적 방법을 사용했다면, 현대의 그것은 이미지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 모니터에 비춰준다. 그렇다면 나는 모니터를 보는 것 인가 그 미시적인 물체를 보고 있는 것인가. 시각이라는 감각은 인간이 매 순간 받아들이는 정보 중 가장 밀도 높고, 다채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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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작가들은 왜 과학을 인용할까?
이 글에는 몇몇 추리소설에 대한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주의하세요. 양자역학과 본격 추리소설의 결합 “그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스레 그게 떠올랐습니다.” “뭐가요.” “슈뢰딩거의 고양이.” 유다의 별, 도진기 전직 판사, 현직 변호사라는 독특한 경력의 소설가인 도진기 작가의 대표작. 유다의 별이라는 작품의 한 대목입니다. 유다의 별은 고진이라는 변호사가 이유현이라는 형사와 함께 기묘한 사이비 집단의 불가능 범죄를 좇는 소설입니다. 그런 소설에 갑자기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도 주인공의 입을 빌려서 말입니다. 작가의 취향이 이런 쪽인가?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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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의 증명
만일 우리가 과거를 추억하지 않았더라면 과거도 우리를 부르지 않았으리라. 부스러지는 파도 소리처럼 밀려오는 자학감에 P는 참을 수 없어 건조한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자살했다. 그것이 P가 내린 결론이었다. 1 “미시세계에서는 이따금, 일어나선 안 될 일들이 일어나.” 그의 표정은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양자역학이라느니 상대성이론이라느니, 물리학에 큰 관심은 없는 P였으나 F가 하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지겨울 정도로 해대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가 순수한 얼굴로 얘기할 때면 상관없어지곤 했다. “질량 보존이나 에너지 보존처럼 위배되어서는 안 될 법칙들도, 아주 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