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으며 세상을 뒤흔든 두 과학자가 있다. 그들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로, 새로운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Cas9을 세상에 알린 업적을 갖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지금 “선택적으로” 원하는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 편집 기술의 최초가 CRISPR-Cas9인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Restriction Enzyme, Zinc finger처럼 여러 세대에 걸쳐 유전자 편집 기술이 발전해 왔다. 내가 원하지 않는 유전정보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단지 우월한 개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Cancer라든지, 그동안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은 유전 질환 등을 고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진 유전자 편집 기술도 아직은 기술의 작용이 완벽하다 할 수 없기도 하고, 윤리적인 문제가 동반되기 때문에 아직 활성화가 이루어지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난치병 환자들은 애가 타기만 한다. 이러한 와중에, 새로운 신약 개발의 방식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표적 단백질 분해(Target Protein Degradation, TPD)이다.
표적 단백질 분해 이전의 기존 치료제는 단순히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부작용은 적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약효가 줄어들었다. 표적 단백질 분해는 말 그대로 우리 몸에 있는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이다. 우리가 아플 때 먹는 흔한 약물들은 특정 수용체에 결합하여 신호 전달 경로를 조절하거나 효소단백질의 활성을 저해시켜 화학 반응을 조절하는 방식 등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 자체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표적 단백질 분해 기술의 종류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표적 단백질 분해 기술의 배경이 되는 우리 몸의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포 밖에서는 분해 효소만 있다면 간단하게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세포 안에서 축적되는 단백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세밀하게 조절되는 기전이 필요한데,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과 오토파지-리소좀 시스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프로테아좀은 세포 내에서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여 재활용하는 단백질 분해 효소 복합체로, 폴리유비퀴틴 사슬과 결합하여 활성을 갖게 된다. 유비퀴틴은 E1-E2-E3 효소작용으로 단백질에 결합하면서 버릴 단백질을 마킹할 수 있다. 리소좀은 프로테아좀과 같은 단백질 분해 효소들을 품고 있는 세포 내의 작은 주머니로 생각하면 좋다. 기능을 잃은 세포소기관이나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 외부 물질을 제거하는 데에 사용된다. 오토파지는 세포 내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스스로 처리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오토파지 조절 기능에 장애가 생기면 이상 단백질을 제거할 수 없어 축적되게 되고, 알츠하이머, 파킨슨병부터 2형 당뇨병까지 다양한 질환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단백질이 한 곳 이상의 조직 혹은 장기에 지나치게 축적되어 기능 이상을 일으키는 질환들을 통틀어서 ‘아밀로이드증’이라 한다. 아밀로이드증은 여러 종류의 단백질에 의해서 침전된 부위에 따라 다양한 질병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발병 원인도 정확하지 않고 치료법 또한 모호하다. 앞서 서술했듯 특정 단백질을 아예 파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포 내의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제거한다는 것은 가히 혁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지금까지 공개된 표적 단백질 분해 기술의 종류를 살펴보자. 우리 몸의 두 가지 기작을 기반으로 한 두 가지 기술이 있다.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을 배경으로 한 기술은 PROTAC, 오토파지-리소좀 시스템을 배경으로 한 기술은 AUTOTAC이라 한다. PROTAC은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 자체를 분해하여 제거하는 원리로, 항암제에 집중되어 개발되고 있다. 반면에 AUTOTAC은 자가포식을 유도하는 형태로 단백질을 분해하는 원리로, 세포 소기관까지 분해할 수 있기 때문에 Cancer 이외에도 과발현되거나 침전된 퇴행성 뇌질환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입덧 방지용으로 처방되었지만, 알고 보니 기형아 출산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가져 판매가 중단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약을 대부분 들어보았을 것이다. 탈리도마이드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 메커니즘도 알고 있는가? 탈리도마이드는 이성질체 분자 구조를 갖기 때문에 입덧 진정 작용과 혈관 생성 억제 작용을 동시에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이 60년이 지나서 표적 단백질 분해 기술로 발전하게 되었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행보인가? 싶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질병의 원활한 치료에 있어 복병이 된 부작용이 도리어 다른 질환의 새로운 치료법이 되는 약물의 이중성에 대한 역사를 알기 위해서, 탈리도마이드가 혈관 생성을 억제하게 된 자세한 기전을 알 필요가 있다.
탈리도마이드가 단백질을 제거하는 원리는 세포 내의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을 이용한다. 우리 몸에 있는 Cereblon 단백질은 다른 단백질들과 결합하여 유비퀴틴 ligase 복합체를 형성하고 특정 단백질의 분해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탈리도마이드가 임산부의 체내에 들어오게 되면 Cereblon 단백질이 결합하면서 태아의 사지 생성 단백질이 억제된다. 이런 효과를 갖는 탈리도마이드에 E3 ligase ligand를 부착함으로써 원하는 독성 단백질 분해만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탈리도마이드의 TPD 작용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2014년 Nature 학술지에 투고된 Structure of the DDB1–CRBN E3 ubiquitin ligase in complex with thalidomide(탈리도마이드와 결합한 형태의 DDB-CRBN E3 유비퀴틴 리가아제 구조 분석) 논문을 살펴보면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표적 단백질 분해 기술의 종류와 유명한 약물 부작용이 TPD의 예시가 된 사례까지 살펴보았다. 유전자 편집 기술로 우월한 개체를 “만드는 것”은 현재 인류의 선망 대상으로써 SF 장르의 단골 주제로 등장하곤 한다. 어쩌면 그것이 유전자 편집 기술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제거한다고 하면 _‘그래서 그게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_라는 반응이 심심찮게 보일 것이다. 유전자 편집 기술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표적 단백질 분해 기술도 어느 순간에 얼마만큼의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차세대 신약 개발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는 표적 단백질 분해 기술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기술 발전의 가운데에 서 어느 순간에 얼마만큼의 기여를 할지 누가 알겠는가?
참고문헌 |
전사 조절에서 유비퀴틴 단백질분해효소계의 역할, 강신성, 2011.
표적 단백질 분해 치료법의 개발, 지창훈, 2020.
Structure of the DDB1–CRBN E3 ubiquitin ligase in complex with thalidomide, Eric S. Fischer 외 20인, 2014.